쉰 즈음에: 꼴찌에게
지금은 그 기분이 기억도 나지 않지만 풀마라톤을 5년전쯤에 뛴 적이 있습니다. 조깅을 시작해서 2년쯤 지나서였습니다.
마라톤을 뛸때 길거리에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쳐줍니다. 일등서부터 꼴등까지 박수를 받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름을 불러줍니다. 번호판에 이름이 적혀있는데 나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내 이름을 불러줄때 너무 힘이 납니다.
특별히 풀마라톤을 완주하고 감동은 없었습니다. 항상 나는 그것이 궁금했습니다. 조깅을 시작할때 자전거및 운동을 2년정도 해서 별로 힘들지 않게 적응했고. 가까운 헬스센터에서 조깅기본을 2달 배운 것도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힘이 안들었다고 할수는 없지만 재미도 있었고 새로운 친구들도 사귀며 별로 힘들지 않게 마라톤완주를 하고 난 후 조깅에 대한 흥미가 줄어들고 이제는 산보를 주로 하게 되였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열심히 조깅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때 기분이 기억납니다. 조깅을 하다보면 남들보다 열심히 하는데 실력이 향상 안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같이 운동을 하니 안타깝습니다.
히프가 너무 발달했거나 비만이면 일단 몸무게를 줄여야 하는데 몸무게 줄이는 것 자체가 어렵고 히프가 발달하면 참 힘듭니다. 그런데 비만이면서 히프가 발달한사람이 풀마라톤을 완주하는 것을 보면 진짜 감동입니다. 그럴때 꼴찌에게도 박수를 보내게 됩니다.
조깅을 잘하는 사람이 폴마라톤을 완주하는 경우보다는 꾸준히 노력한 사람들이 더 많이 풀마라톤을 완주하는 것 같습니다. 내 경우는 부모님께서 건강한 몸을 주셔서 감동을 못느낀 부류입니다. 풀마라톤을 서브 3 (3시간 이내)에 도전하면 감동을 느낄지도 모르겠지만… 이제 마라톤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좋은 집안 자녀들이 인생에 대한 고마움이 적은 것도 같은 이론일 것 같습니다.
아픈만큼 성숙하고 절망한 만큼 성장한다
탁구 국가대표선수였으며 태릉 선수촌장이였던 이에리사는 "선수는 딱 자기가 노력한 만큼만 좌절하고 절망합니다. 죽을 만큼 노력하지 않은 선수는 깊이 절망하지도 않습니다. 이것이 진짜 도전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인생에서 성공이 전부는 아니며 꼴찌들도 박수를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이런 박수갈채는 깊이 절망할 만큼 최선을 다한 꼴찌, 실패한 뒤 통한의 눈물을 흘리는 꼴찌, 다음을 기약하며 절치부심하는 도전자 꼴찌들의 몫일겁니다. 그러나 인생에서나 스포츠에서나 대부분 절망을 느끼지 못하는 노력만큼 하는 것 같습니다.
내가 폴마라톤을 완주하고 기쁘지 않았던 것은 준비하면서 절망을 못느껴서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망하지 않았다는 것은 죽을 만큼 노력하지 않았다는 것일겁니다. 진짜 노력했는데 실패했다면 절망감도 깊겠지만 허망하지는 않을겁니다.
살면서 절망해본 적 있습니까?
많은 경우 적당히 노력했는데 허망하게 실패한 적과 고난이 왔을때 재수가 좋았거나 주위사람들의 도움으로 쉽게 벗어난 적은 있지만 절망에본 적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아직도 인생의 깊은 맛을 모를 것 같습니다. 절망할만큼 노력해야 하고 목표도 높히 잡아야 하는데 이룰수 있는 목표만 정해놓고 적당히 살다보면 절망이 무엇인지 모르고 평생을 살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꽤 높은 목표를 정해놓고 온탕/냉탕을 몇년 간 왕복하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이 절망인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절망 안에 있으면 절망인지 모르겠죠!
바다 속에 고기가 바다를 떠나야 물이 무엇인지 이해하듯 절망을 벗어나야 절망 안에 있었는지 알겁니다.
절망이라는 현실을 먹는 불가사리: 희망
베스트 셀러 반열에 올라간 "성공 처세" 관련 책의 저자들은 열에 아홉은 바닥을 쳤던 사람들일 겁니다.우리가 알고 있는 성공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바닥을 한동안 헤메던 사람들일겁니다.
그들은 어두운 바닥을 서성이면서 자신의 무능함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을 것이고, 그 절망 속에서 단 한가닥의 희망을 길어 올렸을 겁니다. 그렇게 끄집어낸 "어떤 것"이 그들을 하늘로 날아오르게 만들어 주었을겁니다. 희망은 언제나 절망 속에서 탄생한다.
절망은 희망으로 가는 길목 위에 놓여있지만 포기는 그렇지 않습니다. 포기는 "죽음"으로 달려가는 지름길일 뿐입니다. 사람들은 스스로 "포기"한 다음, 그 상태를 뻔뻔하게도 "절망"이라고 표현한다고 합니다.
포기하지 말고 절망해라. 어쭙잖은 희망 갖지말고 밀치고 올라가야 할 단 한가지 희망만 붙잡으라고 합니다.
이런 경험을 해야 한다고 합니다.
바닥인지 알았더니 지하 3층까지 또 내려가 보고 ‘이제 이게 마지막이다’ 하고 악을 쓰며 지하 3층에서 바닥까지 올라왔더니 지나가던 덤프트럭에서 흙더미가 쏱아져 덮치니 진짜 절망감에 빠지게 되는 경험
그때 그 흙들을 바닥에 다지며 지하에서 탈출해야 한다고 그리고 그때는 몰랐섰지만 그 흙들은 희망이였다고!
절망하는 사람에게 최대의 독약은 과거를 생각하는 겁니다. 왜 그랬을까? 절망하는 사람은 그냥 열심히 자신 앞에 쏟아진 흙더미를 치우면 됩니다. 치우다보면 길이 보이고 길은 희망이 됩니다.
그래서 지혜란 지식이나 생각이 아니고 직접 몸으로 겪은 경험에서 깨우친 겁니다.
[출처] 쉰 즈음에: 꼴찌에게 |작성자 트레이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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